일본의 역사2 (봉건 시대~메이지 유신)

봉건 일본 (1185년 - 1868년)

가마쿠라 시대 (1185년 – 1333년)

1185년에서 1333년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 이 시기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겐페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쇼군으로 취임한 후에 시작되었다.
가마쿠라 시대는 사무라이들의 군주 정치가 주도적이었던 시기로, 가마쿠라 쇼군은 실질적인 국가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군주(쇼군)의 힘과 사무라이들의 권력이 강화되었다.
가마쿠라 시대는 또한 미나모토 씨족과 후지와라 씨족 사이의 민족적인 통합을 위한 노력이 있었던 시기이다. 일본은 몽골의 침공을 비롯한 외부 위협에 직면했고, 몽골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는 데 성공했다. 이 시기에는 또한 불교의 발전이 있었으며, 가마쿠라 쇼군의 보호 아래에서 다양한 불교 단파가 발전하였다.
가마쿠라 시대는 또한 무사 문화의 번성기로도 알려져 있다. 사무라이들은 군사적 재능을 발휘하면서 불교의 영향을 받아 정신적으로 성장했으며, 무사정신이 강조되었다. 또한, 무사들은 민속적인 전통과 예술을 즐겼으며, 가마쿠라 시대에는 유명한 시인들이 활약하였다.
가마쿠라 시대는 이후에 무사들 간의 분열과 정치적인 불안정으로 이어지는 난국의 시기를 암시하는 전환점이기도 했다. 이 시기는 국가적 통일의 추세를 강화하고 무사 문화의 전성기를 겪는 동시에 미래의 불안정한 시기를 예고하는 중요한 시기로 평가된다.

무로마치 시대 (1336년 – 1573년)

1336년부터 1573년까지의 시기를 가리킨다. 이 시기는 아시카가 씨족이 일본의 지배를 장악한 시기로서, 그들이 수도를 무로마치(현대의 교토)로 옮기면서 시작되었다. 무로마치 시대는 전통적인 일본의 귀족의 권력이 쇠약해지는 대신, 무사들의 권력이 크게 증가하였고, 그들이 정치와 군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시기에는 무사들이 각 지방에서 독립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동시에 중앙정부와의 갈등도 빈번히 일어났다.
무로마치 시대는 또한 문화적으로 번영한 시기였다. 아시카가 쇼군의 후원을 받아 문화와 예술이 발전하였으며, 이 시기에는 무로마치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적 유산인 노 등이 발전하였다. 특히, 무로마치 시대에는 도자기 등의 예술 작품이 활발하게 제작되었고, 미술과 건축 분야에서도 혁신과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무로마치 시대는 일본의 분열과 정치적인 불안정으로도 악명이 높은 시기였다. 무사들 간의 분열과 갈등, 그리고 외부 위협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여 일본은 분열과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 이러한 분열로 인해 이후 시대에서는 무사들의 통제력이 약화되고 중앙집권적인 정부 체제가 다시 강화되는 추세를 보이게 된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1573년 – 1603년)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는 오다 노부나가와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중심으로 한 전국적인 통일을 시도한 시기이다. 전국적인 정치적 혼란과 군사적인 격변을 경험했으며, 아즈치와 모모야마라는 지명이 시대의 시작과 끝을 대표한다.
이 시대에는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무력 충돌과 정치적 갈등이 있었다. 특히, 일본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쟁 중 하나인 세키가하라 전투와, 히데요시의 경제적 발전을 도모한 '국방의 요충지'로서의 아즈치 성 건설 등이 있다.
이 시기는 또한 문화적으로도 번영한 시기였다. 특히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시대는 근대 일본 문화의 초기 발전을 이룬 시기로, 근대화된 도시 건설과 미술, 문학, 무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발전이 있었다.
이 시기의 종교적인 변화도 중요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기독교를 보급시키고, 히데요시 시대에는 일본에 기독교가 소개되었다.
하지만,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는 1600년의 세키가하라 전투로 끝나게 된다. 이 전투에서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후계자를 패배시키고 일본의 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이것이 곧 에도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전환점이 되었다.

에도 시대 (1603년 – 1868년)

이 시기는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현 도쿄)에 쇼군을 세우고, 일본을 지배하며 시작되었다.
에도 시대는 전국적인 평화와 안정을 특징으로 하며, 이러한 안정적인 기간 동안에는 경제와 문화가 번창하였다.
에도 시대에는 쇼군이 중앙 통치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각 지방의 다이묘(지방 영주)들이 지방 통치에 참여했다. 에도 시대에는 사무라이와 무사들의 권력과 영향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사무라이들은 주로 지방 통치와 군사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또한, 에도 시대에는 현명한 경제 정책이 시행되었으며, 상업과 농업이 발전하여 경제적 번영이 이루어졌다.
문화적으로는 고유한 문화의 번영을 이룬 시기로 평가된다. 이 시기에는 우키요에나 다양한 문학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호쿠사이 등의 유명한 화가, 작가들이 활약했다. 또한, 가부키 연극 등의 고전 극장이 형성되었다.
에도 시대의 종말은 1853년에 미국 해군의 매튜 페리 함장이 일본을 찾은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일본은 외부의 압력과 문화적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현대적인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 되었다. 1868년에는 메이지 유신으로 에도 시대의 끝이 선포되었다.

현대 일본 (1868년 - 현재)

메이지 유신 (1868년)

메이지 유신은 1868년 일본에서 천황 통치의 회복을 이끈 사건들을 일컫는다. 유신은 일본을 근대화하고 강화하여 서구 열강과 경쟁하고자 하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변혁이었다.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황에게 권력을 회복시키고자 했던 사무라이, 지역 지도자들, 그리고 다른 반쇼군파들의 연합이 주도했다.
대내외적인 압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유신의 계기가 되었다. 국내적으로는 막부 통치에 대한 불만, 경제 침체, 사회적 불안 등이 변화의 바람을 키웠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을 중심으로 대외 무역을 위해 개항을 압박해온 서구 제국주의의 위협이 있었다.
1867년 마지막 도쿠가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물러나고, 이후 1868년 메이지 천황이 황권을 회복하게 되었다. 메이지 신정부는 일본의 근대화를 목표로 봉건제 폐지, 근대적인 중앙집권정부 수립, 서구의 기술과 제도의 도입,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촉진 등 일련의 개혁을 단행했다. 메이지 유신은 일본에 지대한 그리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일본이 산업화된 국가로 빠르게 근대화하고 변화하는 길을 닦았다. 유신은 또한 일본이 20세기에 세계 주요 강국으로 부상하는 기반을 마련했다.